지지난 주와 지난 주

치니 Chinie
7 min readOct 23, 2023

빠리, 빠리 읊고 다니는 것도 이제 그만하자 싶다가도 문득 문득 여행의 잔향이 아직 남았다는 것을 느꼈던 지난 주.

도시보다는 그래도 자연이 최고지! 라는 마인드의 소유자는 결코 ㅎㅎ 아니지만 계속 도시에서 놀다가 제주의 자연을 보니까 또 그 나름 참 좋구나 싶었네.

Y 과장님이 여기 커피 맛있어서 사 왔다며 드립백을 줬는데 꽤 괜찮아서 오랜만에 서귀포 쪽 바람 쐴 겸 가 봤던 포비 제주.

베이글도 주력 판매 중이었는데, 오 노…요새 베이글 이 맛으로 내면 안 파느니만 못할 걸요…커피는 역시 괜찮긴 했지만 야외 테라스에서 마주보는 산방산을 즐겨야 금상첨화인 장소인데, 주변 축산업 관련 냄새가 장난이 아니라…으으음, 여러모로 난감한 곳이었다. 아마 일부러 다시 가진 않을 듯. ㅎㅎ

냄새 때문에 서둘러 안으로 들어가 남은 커피를 마신 뒤 건과 함께는 처음 가 보는 산방산 근처 산책. 오래 전 이 바로 옆 용머리해안 갔던 기억을 떠올리며 조잘조잘 (이 날은 너울이 높아 개방하지 않았음), 관광을 목적으로 제주에 온다면 그래도 용머리해안은 여전히 추천하고픈 곳이다.

회사에서 소위 ESG 캠페인의 일환으로 플로킹을 했다. 그 전에 헌혈 봉사도 있었으나 나는 해외에서 돌아온 지 1개월 미만이라 못했고. 이런 것들 예전에는 아예 나랑 관련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어떻게든 안하려고 했는데 (단체활동 포비아;;), 요새는 웬만하면 그냥 하려고 한다. 몇 몇 빌런을 잘 피하고만 다니면 그럭저럭 할 만도 하고 사무실에 앉아만 있는 게 워낙 지겨워서 ㅋㅋ 차라리 나가고 싶음.

별도봉 — 화북포구-삼양해변으로 이어지는 코스였는데, 화북포구 근처에 4.3 유적지가 (되게 외로이) 간판을 세우고 있었고 돌들로 장식을 잔뜩 해둔 카페가 있었다. 돌을 쌓아둔 것을 보면 항상 의아하다. 왜 자꾸 돌만 보면 쌓으려 할까, 인간은…이것은 선사시대부터 이어진 본성인가…흠. (나는 한번도 쌓은 적 엄슴.)

건이 요새 일을 쉬고 있어선지, 나는 요리를 거의 안하고 지낸다. 이 날은 반찬이 마땅치 않아 참치파스타와 빵으로 저녁을 먹었는데 맛있었네. 역시 직접 해 먹는 게 제일 맛있긴 함.

오염수다 뭐다 말이 많아 왠지 해산물을 멀리 하기도 했고, 어쩌다 보니 주로 고기 위주로 외식을 했어서 갑자기 일식 오마카세가 당겼다. 동료 H 주임님이 사는 동네 근처에 새로 생긴 곳이 괜찮아 보인다길래 냉큼 예약하고 지난 토욜에 가 봄.

인테리어와 전반적인 맛은 나쁘지 않았지만 샤리(적초를 쓰신다는데 너무 고슬한 밥과 생선이 계속 따로 놀아서 ㅠ 젓가락으로 먹기가 힘들 뿐더러 초 향이 지나치게 강한 나머지 더 강한 등푸른 생선 위주로만 스시를 잡으니까 나중에는 좀 질리게 됨)와 사장님의 접객 태도가 우리와 잘 맞진 않아서(오마카세는 아무래도 이게 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아마도 재 방문 안 할 것 같다.

이 날 사장님과 스몰 토크 하면서 느낀 것들:

  • 2023년 현재에도, 그렇게 젊으신데도, 미쿡에 살다 왔는데도(아니 아마 오히려 그랬기 때문에), 희한하게 사대주의가 뇌에 깊숙이 박혀 있다. 우리는 어쩔 수 없는 것인가…
  • 내 나이 쯤 되면 중장년으로 취급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기지만, 무슨 음식을 권할 때 ‘어르신들은 이걸 좋아하시더라고요’ 라고 단정적으로 말하면 곧잘 불편해진다. 처음에는 자격지심 비슷한 건가 스스로도 헛갈렸지만 아니고, 상대에게 문제가 있는 게 맞다는 결론. 뭐든 보이는 나이로 재단하려는 습성이 많은 사람들에게 깊숙이 박혀 있다. 우리는 어쩔 수 없는 것인가…

등푸른생선 위주로 먹어서 그런가, 비린 맛이 오래 가는 느낌이라 바로 옆 어글리딜리셔스 가서 에스프레소 마셨다. 거의 아무도 주문하지 않는 메뉴라 설탕을 따로 준비 못했다며 대신 설탕 시럽을 주심. ㅋㅋㅋ 알바님이 설탕 없이 이 쓴 걸 마실 리 없다고 굳게 믿는 거 같았어요…

주말에 이선균 배우의 마약 사태가 터졌는데, 다른 연예계 사건에 비해 관심이 많이 가서 계속 검색해보고 그랬다. 내내 특유의 발음 때문에 싫어하다가 최근 들어 급 호감으로 바뀌어서 출연작들도 챙겨보고 그랬는데, 앞으로 보기 힘들겠네 싶어서 아쉬운 것도 있고 아직은 내사 단계인데 이렇게까지 보도를 하나 싶어서 의심 가는 면도 있고 마약이 물론 잘한 짓은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중죄인 취급할 것인가 (음주운전에 비해 남에게 피해를 덜 주는 거라고 나는 생각하고, 성폭력 이런 거랑은 뭐 비교도 안되지)에 대해서도 여러 생각이 들어서.

그리고, 보고 싶었는데 제대로 각 잡고 보고 싶어서 계속 미뤘던 영화 <타르>도 봤다.

막연히 기대는 했지만 실제로 보니 더 재미있었다. 요새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게 되어서 더 극대화 된 것도 있고, 뭣보다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가 완벽 그 자체라서 연기만 봐도 재밌음. 단 한 장면도 안 나온 장면이 없다 싶을 정도로 계속 나오는데 질리지도 않음.

보면서 생각했다. 휴 진짜 연주자(전문 음악가)로 사는 삶은 너무 힘들 거 같아…ㅠ 웬만한 사람은 버텨낼 수 없는 고난의 연속이다….

감독이 의도한 건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눈을 부릅뜨고 봐도 몇 몇 장면은 이해가 잘 안되었는데, 굳이 명명백백하게 뭔지 알아내고 싶지는 않다. 구찮기도 하고 그냥 뭐…이런 영화에서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싶기도 하고…다시 보면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하고, 조금은 불친절한 편인데 멋 내려고 너무 불친절하게 군 건 아닌 느낌이라 괜춘.

젠더론이나 정치적올바름 때문에 몇 백 년 전 인사들(예. 바흐)까지 끌려나와 이런저런 논란을 빚는 장면이 인상적이긴 했지만, 초반에 이런 식으로 형이상적 대사가 몰아치다가 이후에는 또 다른 분위기를 잡아서 약간 갸우뚱. 반면 후반에는 다시 , 앞집 할머니 죽은 뒤에 자신의 연주 소리를 소음으로 치부하는 이웃에게 보란 듯이 아코디언 연주하며 즉석 가사 만들어 노래하는 씬 같은 경우 되게 좋아졌다. 강약강, 이런 건가... 아무튼 이래저래 극장에서 봤다면 더 좋았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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