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성진의 ‘예술가 그게 뭔데’㉑] 류엘리 사진작가 “예술, 자기 수행 과정에서 나오는 믿음의 산물”

사이아노 타입과 유리 이용해 작품 활동하는 류엘리 사진작가편
김영식 기자
ys97kim@naver.com | 2023-12-14 15:08:11
▲ 류엘리 작가.(사진=변성진 작가)

 

[세계로컬타임즈 김영식 기자] 예술은 늘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작품전시가 개최되고 있으며, 수많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해 내적 외적으로 고군분투 중이다. 하지만 대중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예술가의 작업 결과물을 완벽하게 이해하기는 힘들다. 예술가와 깊은 대화를 나누기 전에는 완벽한 소통이 아닌 순간의 감성 소통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사진작가 변성진의 <예술가, 그게 뭔데?>는 이런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갈하기 위한 취지에서 시작됐다.

예술을 위해 자신의 삶을 사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예술가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며, 예술이란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등등 예술가 이야기를 군더더기없는 질의·응답 형식으로 들어봤다.

관련 릴레이 인터뷰 중 스물한 번째로, 사이아노 타입과 유리를 이용해 자신만의 색깔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류엘리 사진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과잉과 결핍 M2-1(60x80cm, C-print, 2023).류엘리 작가

Q: 자기 소개해주세요.

A: 안녕하세요. 사진 작업을 하는 류엘리입니다. 광주대학교 사진학과를 졸업했지만 결혼, 가사, 육아에 전념하다 보니 창작활동을 이어가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 비교적 늦은 나이에 용기를 내어 국립한경대학교 일반대학원 사진‧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현재는 가사와 육아를 병행하면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Q: 작업 또는 활동 사항이 궁금합니다.

A: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구분짓는 편은 아니지만, 현재는 블루프린트라고 알려진 사이아노 타입(cyano type)과 유리를 이용해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비은염 사진인화는 디지털 사진과는 달리 수많은 작업 과정을 통해 한 장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한 장의 사진 인화를 위해 약품 계량부터 도포, 건조, 수세에 이르기까지 수공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다 보니 여러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한 장의 이미지는 작업자에게는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닌 사진이 됩니다.

그런데 가사와 창작을 병행해야 하다 보니 가족이 함께 생활하는 집에서 작업을 하기에는 약품과 작품 관리 등에 있어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해 다양한 부업을 하며 어느 정도 자금을 마련한 뒤 집 근처에 작업실을 얻었고 현재는 집과 작업실을 매일 오가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작업실 유지 관리 비용 등에 대한 부담은 여전히 있지만, 가정경제와 작업실은 분리하고 싶어 고군분투 중입니다.

Q: 지금 하는 일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A: 하루는 유리를 수세하는 과정에서 날카로운 유리에 손을 크게 베인 적이 있습니다. 그 이후 유리판을 만지는 것 자체가 겁이 나더군요. 그런데 내가 나를 믿지 못하면 어떻게 하겠냐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다듬는 과정에 좀 더 집중하고 나를 믿어보자고 생각하니 그 이후부터는 유리에 손이 베일 걱정은 들지 않더라고요. 흔들리지 않고 나 자신을 믿고 가보는 것. 지금 하는 작업은 저에 대한 믿음을 키워가는 과정입니다.

UnVisible-푸른자화상#2(60x90cm, 백릿페이퍼, 2019).류엘리 작가

Q: 추구하는 작업 방향 또는 스타일이 있다면.

A: 평범함 속에서 색다름을 찾는 게 제가 추구하는 작업 스타일입니다. 첫 번째 전시회 <고개 숙여 하늘을 바라봅니다- The Floor>의 경우, 아스팔트 바닥을 어안 렌즈로 근접 촬영해 마치 미지의 행성을 보는 듯 연출했습니다. 두 번째 개인전 <블루 비너스>에서는 UV 라이트를 이용해 육안으로는 안 보이는 잡티, 흉터가 가시화된 초상화를 시도해 봤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전시한 개인전 <과잉과 결핍>에서도 평범함 속 비범함을 찾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어쩌면 아름다움이 아닌 깨진 것 또는 추함에 관심이 많이 가는 이유와 의미에 대해 확실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기에 지금의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듯합니다.

Q: 작업의 영감은 주로 어떻게 얻나요.

A: 작업의 영감은 주로 일상의 경험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무심히 지나치던 대상에 눈길이 가게 되면 그 생김새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저 자신에 관한 생각으로 옮겨 갑니다. 마치 대상과 제가 하나 된 듯한 느낌이 듭니다. 대상을 통해 제 내면을 응시하게 되는 거죠. 그게 제 작업의 원동력입니다.

Q: 인생의 길잡이가 되는 명언 또는 글귀가 있다면.

A: 힘든 우회로라 할지라도 길이 없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마음을 쏘다 활:오이겐 헤리겔(Eugen Herrigel))

Blue venes #08(50x72cm, C-Print 2020).류엘리 작가

Q: 내가 생각하는 예술이란.

A: 저는 예술을 자기 수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작업하는 과정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며,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보듬고 끌어안는 일이라는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예술은 또한 나 자신도 몰랐던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고, 스스로 규정했던 어떤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원천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Q: ‘독창적인’이라는, 그것에 관한 생각은.

A: 말로 쉽게 표현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인데 지금 떠오르는 생각에는 쉽게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의 두 번째 개인전 <블루 비너스>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피부과에서 사용하는 UV 라이트 사진에서 착안한 것입니다. UV 라이트로 촬영한 얼굴은 흉터와 잡티가 가시화된 매우 추한 형상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 뒤에 그런 추함이 자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죠. 그래서 병원 의료용 사진도 잘 연구하고 응용한다면 충분히 독창적인 작품으로 표현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은.

A: 12월 11일까지 진행한 <과잉과 결핍>은 의 연장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과잉과 결핍>은 사진 인화 과정에서 생기는 유리판의 크랙을 사용한 작품입니다. 다음 작업은 가칭 <Blue Venus> 작업으로 푸른 빛과 색을 이용한 작품을 선보일 계획입니다.

Q: 나는 이런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A: 사람과의 관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 능력이 뛰어났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The Floor #103(50X90cm, C-print, 2017).류엘리 작가


[인터뷰: 변성진 작가/ 자료제공: 류엘리 작가/ 편집: 김영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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